회사 워크샵을 다녀왔다.
강원도 해변가에 있는 호텔이었는데 비성수기라 그런지 인적이 드물었다. 거의 회사사람들이 전부인 것 같았다.
회사에 오래 근무한 사람들이 꽤 많았고 현장에 나가있는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나 서로 안부인사도 묻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나는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라 아는 사람도, 그렇다고 딱히 먼저 다가가서 나를 내보일 넉살도 없어서 모두가 객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혼자 호텔 앞의 해변에 나갔다. 폭풍 같은 작년을 지나오고 잠깐 쉴틈도 없이 이직해서 매일매일 출근했던 나한테 도시의 소음을 벗어난 시간이 반갑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마치 썰물 때의 동해는 바닷바람과 파도소리가 가득했다. 해변중간에 공사 중인 중장비와 건축자제들이 쌓여있긴 했지만 다행히 밤이라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썰물을 만난 해변은 무서울 정도로 휑했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우리는 자연의 경계 밖에서 자연에 기대어 살면서도 그 경계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여놓게 되면 인간이 한없이 작음을 느끼고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 같다.
막힘없이 펼쳐진 시야가 후련하면서도 어쩐지 알 수 없는 그 너머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주는 것 같았다. 바다에 올 때마다 하는 생각인데, 어떠한 정보도 없던 옛날에 배를 타고 육지로 부터 멀어져 지평선을 넘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긴장 속에서 나라면 그 여정을 떠날 용기가 있었을까. 사는 일이 다 그렇게 느껴진다. 삶의 지평선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지평선을 넘어야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괜스레 내가 내리는 선택들에 비장해지고 차선책 같은 현재의 삶도 두근거리기까지 한다.
파도는 내가 있는 곳을 금방이라도 집아삼켜 해변을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눈을 감고 밤 파도가 닿지 않을 만큼 최대한 가까이 간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간다.
두려움이 밀려울 때 즈음 눈을 뜨면 아직 스무 발짝은 거 갈 수 있는 거리가 남아있다.
그럼에도 눈을 감고 다섯발짝, 두 발짝, 세 발짝. 벌써 내 신발을 적실만큼 물이 가까워진 것 같아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을 뜨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여전히 열 걸음.
파도 소리가 가까워져 두렵다는 것은 파도에 다가갔다는 뜻이고, 파도가 근처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것이 기회이든 위협이든 이제 손 내밀면 닿을 도처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뒤로 돌아서 몇 걸음만 더 멀어져도 소리는 의식에서 멀어지고 이내 심박이 돌아온다.
눈을 감았을 때는 한걸음 내딛기도 겁나는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니 상대적으로 도망쳤다는 안도감으로 물든다.
파도는 멀리서는 어쩌면 아름답고 고요하게 존재하고 밀려오는 하나의 소리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다가서면 파도가 형성되고 밀려오고 부서지고 사라지는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소리들은 멀리서 듣던 소리만큼 아름답고 고요하고 친절하지만은 않다. 무자비하고 파괴적으로 귀에 부딪힌다. 그러나 기억하자. 아름다웠던 소리들이 무자비한 위협처럼 들리고,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다면, 나는 파도 앞에 더 다가와있음을. 그럼에도 눈을 뜨면 아직 나에게는 열 걸음. 다섯 걸음. 세 걸음. 마지막 한걸음 더 갈 공간이 남아있다는 것을.
만일 파도가 내게 위협이라면 아직 기회가 남아있다는 것이고, 기회라면 젖기 전까지 마지막 걸음이 남아있다는 것을.
돌아서서 도망쳐도, 그 자리에 남아 두려움에 맞서도 파도가 해변을 뎦쳐 내가 빠져나오지 못한다던가, 발이 다 젖어버린다던가 하는 일은 내게 닿지 못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만일 내가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는 상황에 있다면 벌써 파도에 젖어 버린 것이 아닌 젖을 것에 대한 예상과 걱정, 그리고 그것을 피하고 싶다는 본능 때문이라는 것을.
조셰프 응우옌의 책 <당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믿지 말라> 에서 작가는 이것을 현실(Reality)과 사고(thinkin)를 구분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즉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어떤 현상(Reality)이 아닌 그것에서 피어난 생각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인지하는 순간 우리는 스트레스 및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우리를 분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현실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파도는 여전히 거기있다.
눈을 떠서 여전히 발을 적시지 못하는 파도를 똑바로 직시하고 인지하면 이내 심박도 가라앉고 두렴움에도 곧 내성이 생긴다.
그런 것이다. 다가가지 못하면 더 자세히 들을 수도, 젖을 수도 없다. 오직 눈을 감고 두려움을 뚫고 걸어가 본 사람만이 파도의 소리도, 아직 내게 남은 거리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꼭 파도의 끝에서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해변을 마주하거나 등지고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고, 파도는 여전히 그곳에 존재한다. 동경하는 세상이 파도 너머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더 가까이 가야 하고, 직시하고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내가 바라던 것을 더 자세히,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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